1910년대 언론상황, 장지연의 친일행적
1910년대 언론상황, 장지연의 친일행적.pp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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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1910년대 언론상황 시대적 배경 총독부 일간지 - 경성일보 - 서울프레스 - 매일신보 31운동과 지하신문 2. 장지연, 그리고 친일행적 장지연의 생애.활동 장지연의 친일행적 - 경남일보 - 매일신보 - 합방이전
본문 시대적 배경 한일합방직전 언론통제
한일합방 직전인 1910년 7월 통감부는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등 6개 신문사 사장과 발행인을 불러 신문검열을 강화할 것이라 경고.
- 대한제국 내에서 관장하던 신문검열 → 통감부 직접 검열 - 조선어 신문이 인심을 선동하는 기사와 비분강개조의 논설 금지. - 항일의병을 “의병”이라 부르거나 이들을 선동, 동정 기사 금지. - 한일관계를 소원케 하는 기사, 일본의 조선 침략에 저항하는 기사 금지.
이 사안을 어기는 자는 치안방해죄 적용.
한일합방 후 언론통제 초대 총독 데라우치의 [신문통일정책]
<대한매일신보><매일신보> <황성신문><한성신문> <대한민보><민보> <대한신문><한양신문>
- <대한매일신보>는 1910년 5월에 통감부가 매입 후 한일합방 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로 발행. - <황성신문>, <대한민보>뿐 아니라 친일 일간지 <대한신문>도 합방후 폐간. - 그 외 조선 침탈의 선전 매체로 활용해 온 일인 경영의 신문도 모두 정리. 경성일보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지시로 친일적 일간지 <한성신보>와 <대동신보>를 매수하여 1906년 9월에 창간.
- 일어판 12페이지, 국문판 8페이지로 한국과 일본에 배포.
- <대한매일신보>와는 달리 <경성일보> 한글판은 독자들에게 외면 → 1907년 일어판만 발행.
- 한일합방 후 총독부 기관지가 되었으며, 해방 이후에 폐간.
서울 프레스 (The Seoul Press)
- 1905년 일본공사관의 보조를 받고 하지가 단독으로 발행하던 <The Seoul Press Weekly>를 1906년 12월 통감부가 매수하여 발행.
- 베델의 <The Korea Daliy News>와 헐버트의 <The Korea Review> 등의 항일언론에 대항해 일제의 침략정책을 대외적으로 선전.
- 당시 일본인, 중국인을 제외한 조선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700여명 으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지만, 총독부는 적자를 감수하면서 발행.
매일신보 - 한일합방 전인 1910년 5월에 베델의 <대한매일신보>를 매수. 한일합방 이후 <매일신보>로 바꾸어 총독부 기관지로 발행.
- 1912년 3월부터 국문판을 없애고, 국한문판의 3면을 한글 전용으로 제작.
- 1913년 <경성일보>사에 합병 자본금 7만원의 합자회사로 개편.
- 내선일체를 목표로 일제의 식민 통치를 선전하는데 주력하여 총독부의 정책과 시정을 널리 보도하면서 민족진영의 반일 활동 비판.
- 학예 기사와 연재소설을 개재하여 신문학의 발표장으로 일정한 기여.
본문내용 적 장지연의 생애.활동 장지연의 친일행적 - 경남일보 - 매일신보 - 합방이전
시대적 배경 한일합방직전 언론통제 한일합방 직전인 1910년 7월 통감부는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등 6개 신문사 사장과 발행인을 불러 신문검열을 강화할 것이라 경고. - 대한제국 내에서 관장하던 신문검열 → 통감부 직접 검열 - 조선어 신문이 인심을 선동하는 기사와 비분강개조의 논설 금지. - 항일의병을 “의병”이라 부르거나 이들을 선동, 동정 기사 금지. - 한일관계를 소원케 하는 기사, 일본의 조선 침략에 저항하는 기사 금지. 이 사안을 어기는 자는 치안방해죄 적용.
시대적 배경 한일합방 후 언론통제 초대 총독 데라우치의 [신문통일정책] <대한매일신보> <매일신보> <황성신문> <한성신문> <대한민보> <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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