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8일 일요일

현대시 한하운 그의 시세계

현대시 한하운 그의 시세계
[현대시] 한하운 그의 시세계.hwp


목차
목차
Ⅰ. 서 론
○ “문둥이 시인”의 삶과 그 시의 문제
Ⅱ. 본 론
1. “문둥이”의 기표로 읽히는 한하운 시의 조각난 신체,
훼손되고 소외된 자아의 문제
2. 과거 돌아보기, ‘고향탐색’으로 드러나는 유토피아의 회복의지
3. 좌절이 아닌 새로운 희망으로서의 죽음에 대한 인식
4. 과거의 극복과 자기 부정을 통한 긍정으로의 도달.
5. 문명 속의 에트랑제로서의 시선.
Ⅲ. 결 론
○ 한하운과 <개구리>의 세계.
참고문헌


본문
Ⅰ. 서 론

○ “문둥이 시인”의 삶과 그 시의 문제
시인 한하운은 1919년 함경남도 함주군 동천면에서 대대로 선비를 지내온 부호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보통학교를 다닐 때부터 남들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어 한국 아이들로서는 가기 힘들었던 이리 공립 농림학교에 입학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12살이 되었을 때 몸과 얼굴이 붓는 증상이 나타났고, 5년 뒤에 나병에 걸린 것을 확인함으로써 행복했던 유년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요양을 통해서 병세가 호전이 되고, 당시 연인인 R의 지극 정성으로 나병의 괴로움을 견뎌 낼 수 있었으나 근본적인 나병을 완전히 치료하고자 북경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러나 북경의 환경 탓인지 간신히 졸업을 하고 돌아왔을 때 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R의 도움을 받아가며 치료를 계속했는데 그 때 나이가 26살이었다. 그가 26살이었던 해는 1945년 한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되었던 해였다. 그에게 있어서는 더 나은 치료의 길이 열릴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던 해이기도 했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마자 그가 살고 있었던 함흥지방은 러시아 공산당에 의해점령당했다. 그의 병으로 기울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많은 소작지를 가지고 있었던 하운 가문은 모든 재산을 공산당에게 빼앗기게 되었고 하운에게 있어서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겨우 동생과 노점 책장사를 하지만 공산당의 횡포에 결국 동생은 공산당에 대항하는 운동에 동참하여 체포되고 만다. 동생이 체포되고 큰 고초를 치룬 하운 그해 어머니를 여의고 그 이듬해 월남한다.
이 후 그의 꾸준한 시작 활동 덕분에 1949년 이병철의 주선으로 한하운의 최초의 시집인<한하운 시초>가 발행되었고, 경기도 부평에 있는 나환자 정착촌인 성계원으로 이주하여 회장으로 선입되었다. 1953년에는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보리 피리>를 발표하였으며 자서전인 <나의 슬픈 반생기>가 발표되었다. 1959년에는 그 스스로 자신의 시들을 해석한 <한하운 자작시 해설집>을 발간하였다. 이후 그의 <나의 슬픈 반생기>가 ‘황톳길’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는 등 그의 작품을 두고 많은 활동들이 일어났다. 그는1975년 56세의 나이에 나병이 아닌 간경화증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연표를 살펴보면 “문둥이”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그래서 시인 한하운은 “문둥이 시인”, “天刑의 시인”으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시의 드라마틱한 생애에 초점이 맞추어진 나머지 시인의 시세계를 개인사의 문제로만 해석하고자 하는 경향들로 인해 지금까지 한하운의 시에 대한 조망이 면밀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의 삶뿐만 아니라 시세계까지도 어쩌면 “문둥이 시인”이라는 일종의 고착화된 고유명사 아래 소외되어 왔는지도 모른다.
그의 예들을 살펴보면 한하운의 시를 두고 이러한 평가가 있다. ‘한하운의 시 작품은 작가가 어떠한 환경, 어떠한 조건 위에서 토로하였든 간에 인간 생명의 원초적 몸부림과 삶은 비극성을 가혹할 정도로 극명하고 처절하게 표현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정서에 충격적인 감동을 느끼게 한다. 물론 한하운 시의 충격의 진원이 그 시인의 예술적 재능이라기보다 개인의 숙명적 비극에 유래한 즉, 천형이 나환자라는 사유에서 비롯된 것임은 사실이다.’ 그의 의도가 한하운의 시가 인간 원초적인 고통에 대한 충격적인 표현에 의한 감동이 잘 드러난 시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하여도 결국 한하운 시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은 나병에 있음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하운에게 만약에 나병이라는 천형이 없었더라면 그와 같은 시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는 그의 논리는 한하운 시인을 나병에 걸린 환자로만 보고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시인의 인간적인 문제가 그 시인이 쓴 모든 시를 만들어내는 진원으로 보는 것은 그 시인과 시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너무나 단순한 논리로 보인다.
또 다른 예를 살펴보면 한하운의 <파랑새>라는 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파랑새>는 문둥이가 되어 보아야만 느끼는 정서요, 울음이요, 절망이요, 동경일 것이다. 인간 생활에서 버림받은 몸, 주검같은 고독은 못견디게 인간을 그립게 한다. 인간이란 건강한 사람들 틈에서 끼어서 살 수 있어야만이 행복한 것이다. 이제부터 문둥이 생활이 시작되어야 하는 그로서는 얼마나 억울하고 기가 막한 절망 속에 빠져 있었어야 했을까.’ 쉽게 <파랑새>라는 작품에서 파랑새의 울음은 천형을 지닌 한하운 시인만이 그려낼 수 있고, 또 천형


본문내용
부호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보통학교를 다닐 때부터 남들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어 한국 아이들로서는 가기 힘들었던 이리 공립 농림학교에 입학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12살이 되었을 때 몸과 얼굴이 붓는 증상이 나타났고, 5년 뒤에 나병에 걸린 것을 확인함으로써 행복했던 유년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요양을 통해서 병세가 호전이 되고, 당시 연인인 R의 지극 정성으로 나병의 괴로움을 견뎌 낼 수 있었으나 근본적인 나병을 완전히 치료하고자 북경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러나 북경의 환경 탓인지 간신히 졸업을 하고 돌아왔을 때 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R의 도움을 받아가며 치료를 계속했는데 그 때 나이가 26살이었다. 그가 26살이었던 해는 1945년 한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되었던

참고문헌
“가도가도 황톳길”, 김창직, 지문사, 1982
“나는 나는 죽어 파랑새 되리”이종성김정숙 공저, 도서출판 부름, 1984
‘문학제도와 정저의 계보학적 지형도-해방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최강민, 15~24p
‘시와 자기구원의 문제’, 고황논집(경희대학교 대학원) vol 13, 1993, 57~66p
“한국전후시인문제연구 3권”, 김학동외, 예림기획
한하운 詩가 있는 명상노우트 , 김명수, 1987
‘한하운 시의 색채심상과 공간상실’, 비평문학 No11, 1997, 466~487p
‘해방기 시연구’ 론총 제26호, 1992, 79~9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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